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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중세 맥주문화

· 댓글개 · potatochip

그림입니다.


  중세 이후 독일은 상하수도와 관개시설 수준이 영 좋지 않아서 안 그래도 나빴던 수질이 개막장으로 변해 버렸다. 당시엔 마땅한 정화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물 대신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음료를 찾았는데 그것이 바로 술이었다. 술은 여타 음료와는 다른 발효식품이었기 때문에 보관이나 저장이 용이했고, 그 중에서도 맥주는 재료를 구하기 쉬운데다 같은 양의 곡식으로 만든 빵보다 칼로리나 포만감이 높아서 상대적으로 가난했던 서민층에 널리 퍼졌다. 근대로 접어들어서는 양조기술이 발달하고 곡물 생산량과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맥주 소비량 역시 증가했다. 16~18세기 독일 맥주문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자료를 몇 가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많은 사람들이 빵보다는 맥주에서 영양을 섭취한다."

-1551년, 요한 브레트슈나이더-


술고래들은 자기 앞에 있는 맥주(혹은 포도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창과 병기들을 가지고 싸우듯이 술잔들을 가지고 서로 싸운다. 처음에는 그들 중 가장 신분이 높은 사람이 건배를 제안하며 공격한다. 그러면 참석자들은 단번에 잔을 들이키고는 십자형(전후좌우)로 잔을 보낸다. 그리고 잔을 받은 사람들은 잔을 채워서 준 사람에게 다시 건넨다. 이리하여 이들은 서로 술잔을 주고받는다. 숨을 헐떡거리거나 수염을 쓰다듬는 일이 없이 잔을 들이켜야 한다. 그리고 자리를 뜨지 않고 남아있는 사람이 최후의 승자가 되어 상을 받는다.

-1599년의 보고-


수공업 수련공들이 일하지 않고 쉬는 월요일, 특히 술판이 벌어져서 얼굴이 푸르게 될 정도로 과음을 한다.

-18세기, 푸른 월요일-


그림입니다.


  맥주를 물처럼 마셔대는 이러한 풍습은 독일 내에 퇴폐적이고 문란한 음주문화를 낳았고, 하층민의 평균수명을 단축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 16세기 종교개혁가인 마르틴 루터는 "음주는 독일에 일종의 페스트처럼 작용하는데, 이는 신이 노해서 우리에게 보낸 것이다. 외부로부터의 압력과 경고조치, 처벌, 그리고 개신교적인 근검정신을 통하지 않고서는 개선시킬 수 없다."라고 말하면서 당시 독일의 음주문화를 맹렬히 비판했다.


  19세기에도 독일의 맥주문화는 별로 바뀐 것이 없었다. 도시 노동자의 수가 증가하면서 맥주를 찾는 사람들은 더 늘어났고 거리에서는 여전히 주정꾼이 기승을 부렸다. 1880년대에 카우츠키는 노동자들에게 맥주음용을 통제할 것을 제안하였고, 이에 공산주의 사상가 엥겔스는 "예전의 잔치에서 볼 수 있었던 안락함과 드물게 나타나던 무절제함이 지금은 칼부림이 빠지지 않고, 살인사건이 빈번한 폭력적이고 무절제한 잔치로 변해 버렸다."라고 말했는데 대체 그 예전이 언제를 말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독일인의 맥주 소비량은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국난이 시작되던 1920년대에야 비로소 하락추세에 들어섰다. 그리고 경제 대공황과 제 2차 세계대전을 연달아 겪은 뒤에는 1900년대 초 통계의 1/3도 안 되는 수치로 떨어졌다. 하지만 1970년대에 독일 국민의 평균소득과 생활수준이 향상되어서 맥주소비량은 다시 급격하게 증가했다. 역시 맥주라면 사족을 못 쓰는 그들의 특성은 알아줘야 한다.


  그나저나 이러한 술문화는 우리도 마찬가지 인 것 같은데, 우리나라 술문화도 고려시대 조선시대 수질과 관련이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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