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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짧으신 형님

· 댓글개 · potatochip

말 짧으신 형님



때는 2004년 4월경입니다. 간만에 주말이랍시고 딸내미와 와이프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형이다"

"네?....;"

"형이라구 씨X새꺄"

"아......형님!!"

"중동역이다."

"네?......?...;;;;;;"

"(끊어버리심)"

현재 저는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상동(이하생략-_-)에 살고 있고, 중동역에서 무척 가까운 편입니다.

이 형님은 제가 알던 다른 행님의 소개로 알게된 분인데..(두분은 절친한 친구분이십니다)

상당히 말의 앞뒤를 잘라드십니다. 그냥 갑작스럽게 말을 툭툭 던지는 타입이랄까요?

"난 짜장"

이러시면 배고프신거고,

"여보세요?.."

"나와(말끝나면 그냥 끊어버리심)"

그러면 술마시는 날입니다; 나가는 곳은 항상 정해져있었고, 그래서 모든 약속이나 말씀에서 군더더기라고는

없으신 분입니다. 제가 계속해서 존대를 쓰는 이유는, 형님의 나이가 저보다 열살가까이 많으시기 떄문입니다.

어린놈이 귀엽게 보이셨는지 고등학교 다닐때 알게된 형님은 제게 술;과 담배-_-를 항상 사주시며 그래도 심심하시면

홀의 중앙에 세워놓고 노래를 시키시곤 하셨다는-_-;

제 결혼식에도 오지 않으셨던 분이(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전화를 하셔서 중동역이라고 하시니 제가

놀랄수 밖에요. 와이프와 제등에 매달렸던 아이를 눈물과 함께 뿌리치고는, 저는 중동역으로 한마리 잘 훈련된

개처럼 뛰어 나갔습니다.

여전히 파리;한 짧은 스포츠형 머리, 그만큼이나 화려한 반팔 꽃무늬 남방(참고로 그때 날씨 반팔 입을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형님의 문신이 슬쩍 보였죠;) 좀 튀어나온 배와 굵디 굵은 팔다리를 가진 180센치의 비범한 인상의

사내가 다행히 경찰의 검문 이전에 절 만나게되었습니다.

"형님!!"

"XX놈아."

기분이 나쁘시다는 이야기입니다;

눈빛에서 서운함과 광기가 느껴집니다.

절 콘트리트바닥에 묻어버리실 이 기세..

"도로 살쪄라. 뵈기 싫다."

"네?.....아 네;"

대답도 군더더기가 없어야 합니다. 형님은 말도 없이 중동역앞에 있는 크라운베이커리(지금은 사라졌음.)에 뚜벅뚜벅

걸어가서는, 생크림 케잌 세개와 빵 2만원엇치를 삽니다. 아저씨가 섬뜩한 표정을 지은채 나와 형님을 노려보십니다.

웬지 떨릴것 같은 아저씨의 손은 자신도 모르게 핸드폰을 꼭 쥐고 있습니다. 형님이 인상이라도 쓸라치면 광속의

스피드로 119를 누르실듯한 포스가 느껴졌습니다. 난 그러든 말든 대체 형님이 왜이렇게 빵을 사시나 싶어,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집니다.

"형님...아니 뭐에 쓰실려고.."

"재수씨. 우리딸, 그리고 너."

그래서 생크림 케잌 세개구나;;;;;;;;;;

"아니..그럼 형님 빵은...."

"배가 고파서. 남으믄 니가 다먹어."

"네?.."

"살쪄야지."

사실 저는 다이어트로 20키로 정도를 감량한 상태였답니다;  카드를 꺼내실줄 알았떤 형님의 주머니에서는 현금이

다발로 꺼내져나와서 주인에게 10만원을 건네십니다.

"소..손님...7만원(7만원인가 8만원인가 나왔습니다)인데요...."

"아자씨. 요놈의 새끼 얼굴 잘 보쇼."

"네?...."

"남은돈 고대로 놔뒀다가, 요새끼 빵달라믄 주슈."

순간 저는 거지새끼가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빵하나 못쳐먹어 마른것으로 모든것을 내몰리는 이기분.....

형님의 머리는 아마도,

이새끼 살빠졌다 -> 가족때문에 고생이 많군 -> 쳐먹어라.

이 세가지로 귀결되는것만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형님은 달랑 케잌 한개만 들고 제게 말씀 하셨습니다.

"니가 다 들어."

"...네!!..;"

중동역에서 그리 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정말이지 고생스러웠습니다. 그 이유란건 바로 저희집 뒷편에

여고가 하나 있는데, 하필 이사람들 퇴근시간이었던것입니다. 어찌나 키득대시던지 뒷골이 뻘쭘하더군요.

양손에 케잌들고 또 그보다도 더 많은 양의 빵을 들고 형님을 쫓아가는데 형님은 제가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는것처럼

자꾸 저한테 소리를 지르시며,

"밥은 쳐먹냐?"

"아..형님 좀...!!"

"에헤헤"

살이 빠졌다해도 그저그런 육체의 소유자인 저를 놀리시고 계셨습니다. 얼굴이 시뻘개져서 집의 초인종을 누르자,

아내는 제 과거의 모습을 상기시키는 표정이 되어 형님을 쳐다보며 허리를 90도로 꺾어 인사를 건내셨습니다.

물론 옆에 서있던 제아이의 표정또한 굳어지며 허리가 90도로 꺾였음입니다.

"아이고 재수씨!! 이거."

"네?....아 감사합니다.."

"니가 시영이여?"

"....으아앙...."

울기직전.

"에헤헤헤!! 아가씨 반가워!!"

"꺄악!!"

-- 쿵 --

"워메"

"시영아!!!;;;;;;"

형님이 아이가 이쁘다며 공중으로 가볍게 던지셨는데, 아이는 웬지 빠른 속도로 떨어졌습니다. 천장에 쿵소리를

내며 말이죠.힘이 넘치시는 덕택에 아이와 천장의 첫 조우를 감당해내신 형님은 머쓱해지셨는지 '워메' 라는 단말마

만을 남기고 내게 고개를 돌려 물으셨습니다.

"니방 어디여"

"네?.......아 저,저기........"

형님은 와이프의 날카로운 시선을 벗어나려 고개를 딱 왼쪽으로만 돌린채 제방으로 걸어들어가십니다. 그러더니

아직도 뻘쭘하게 문밖에서 서있는 제 손의 빵 봉투를 툭 채어가십니다. 다시 제방으로 들어가셔서는 의자에

앉아서 빵을 꺼내셔서 드시는데, 제가 방에 들어가 빵을 제자리에 두고 쥬스 한잔을 들고 방을 다시 찾았을때

무려 여섯개가량의 빵봉투가 방바닥에 버려져있었습니다. 형님의 얼굴은...왜 그런지 모르게 시뻘개져 있었습니다.

"형님?....."

"께엑....."

그러시더니 쥬스를 채가셔서 순식간에 마셔버리십니다.

"디져분줄알았네."

아마..마지막 세개정도의 빵이 팥빵이었나봅니다. 별 말도 없으신채, 가만히 그렇게 앉아게시다가 주머니를 뒤적이십니다. 뭘 찾으시는건가?.....

그러시더니, 제가 평생 잊지못할 짓꺼리를 하게 만든 한마디를 제게 던지셨습니다.

"시나불어"

"네?....."

"시나불어.두번 말시키지마 씨X"

제가 지금도 글쓰는일에 종사하고 있긴 하지만, 예전부터 시쓰고 이런거 참 좋아했습니다. 형님은 제가 쓴 글들을

가끔 읽어보시고는 머리를 툭치시며 '공부나 그렇게 해봐' 라고 말씀하시며.......왜 그러시고 나서 항상 술사주셨는지

모르겠지만; 여튼......태어나서 처음으로 형님에게 제 목소리로 시낭송을 해드릴려니 영 쑥스럽습니다.

"어떤걸로....."

그러자 형님은 절 이상한 눈초리로 보시더니, 다시금 말씀하십니다.

"아무거나 시나불어."

"아무거나?......"

"응."

"그럼...시작하겠습니다."

제 시작하겠다는 말에 또한번 형님은 절 이상하게 쳐다보십니다. 그리고 저는 유일하게 외우고 있는 한용운님의

님의 침묵을 낭송합니다.

님의  침묵

                                                         - 한용운 -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려 갔습니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끝까지 낭송하자..제 눈에서는 여전히 민감한 감수성 때문에 눈물이 흐르려고 합니다.

"크흑..."

그러다, 저는 가만히 형님의 눈을 쳐다봅니다.

형님은 자신의 입을 막고 견디기 힘든 표정으로 눈이 ^^ 이렇게 되서는 차마 어찌할줄을 몰라하십니다.

"크하하하하!!!!!!!!!!!!!!!!!!!!!!"

"혀,형님!!;; "

아니 시 불래서 시불었더니 왜 저러시는지 저는 알수가 없었습니다. 형님은 계속해서 웃음을 터뜨리고,

저는 당황스러워 어찌할바를 모르고 서있었습니다.한 5분 그러셨나, 형님은 숨을 몰아쉬시며 제가 다시 말했습니다.

"시.나.불.오"

"네?......"

"너 시나브로 몰라?.....담배 크흐흑....."

이런 앰병할.

아...으아아......으아아!!!

쪽팔려 미치겠습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심장이 벌떡댑니다.

제가 했던 행동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왜 제가 담배를 끊었던 것일까요. 이미 말보로란 이름마저 기억의 끝에서 서성이던 그때

시나브로라는 국산담배가 절 완전히 넉다운 시켜버렸습니다.

이제 제가 할일은 단 한가지뿐.

"형님......제발 와이프에겐 말씀 말아주세요!!!;;;;;;;"

......그랬다간 향후 몇년간 웃음거리로 사용될것이기 때문에-_-

"그래..그래..크흐흑..여튼..시나브로 한갑 사와라"

저는 문밖을 나가면서도 형님을 몇번이나 불쌍한 눈으로 쳐다보고는 그사이에 무슨일이라도 있을까 싶어

엉덩이에 불난것마냥 가게로 뛰어나갔으나...

"없어요"

다른가게.

"없는데?"

또다른가게.

계속 시나브로는 없다는겁니다. 그래서 저는.....항상 국산만 피시던 형님을 떠올리며 씨마;를 샀습니다. 이게 뭔지도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펴본적도 없고.........여튼 집에 들어갔는데.....

"꺄하하하!!"

"에헤헤헤 재수씨 웃기지라잉?"

"여보......진짜야?.........오호호호호!!!!"

아이고 앰병 형님이 그러면 그렇지;

유일하게 말이 많아지는 순간은 형님에게 이야기 꺼리가 걸렸을때였습니다.

아마, 저는 순천이라는 고장으로 다시는 내려가지 못할것만 같았습니다.

아는 분들마다 분명 저이야기로 화기애애해 질테니;;

그래도 오랜만에 만난 형님의 말문이 터지니 그후로는 좀 덜답답했습니다. 그렇게 한 두시간쯤 지났을 무렵입니다.

"갈란다."

"네?.....아니 뭐 다른일 있으세요?....."

"집에 가야재."

"집에요??.."

"암. 잠은 집에서 자야 할꺼 아니냐. "

"그래도 저녁은......"

이미 제 대답과 함께 신발을 신으시는 형님이십니다.

"됐다. 재수씨. 저 갈라요!!'

"어머..벌써.."

"꼬맹아. 담에 보자잉. 그때는 삼촌이라고 불러라....이제 안던질께."

"안녕히 가세여....."

아이의 인사를 받은 형은 그만큼이나 빠른속도로 나가시고, 저는 또 부리나케 그 뒤를 쫓습니다.

"형님 서울에 일있으셔서 오신거에요?"

"너보러"

"아.....죄송해요 형님..제가 먼저 연락을....."

형님은 아무 대답이 없으십니다. 가만히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형님이 절 쓱 쳐다보십니다.

"잘들었다"

"네?......"

"크크큭......"

"-_-; "

"이쁘게 잘 키워라."

"네 형님. 정말 감사합니다"

"살쪄 너는."

".....네;;"

지하철이 도착하고 나서 형님이 절 쳐다보시면서 마지막으로 말을 건네십니다.

"서랍."

"네?........"

"간다."

그러고 형님은 가버리셨습니다.

서랍이라니..무슨소린가 한참 골몰히 생각하다가, 도저히 알수 없어 생각을 접고 집에 와보니

제 책상서랍안에 봉투하나가 있었습니다.

10만원.

그리고 짧은 쪽지 하나.

" 시영이 맛있는거 사줘라."

너무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삶에 바빠 잊고 지냈던 제가 너무나 미련하고 바보스러웠습니다.

단지 저와 가족을 보고 싶어 긴시간을 마다않고 와주신 형님에게 한없이 죄송할 따름이었습니다.

이름마저 잊어버렸던 형님이 이젠 제 딸의 이름까지 기억해주셨습니다.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어느순간 누군가 자신을 기억해주지 않는다면,그사람은 그순간에 살아있는것이 아닙니다.

후에 상철이형님(이형님의 친구분.원래 제가 알던분이 이분이십니다)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형님께서 체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제 가족이 부담스러울까봐 일부러 들어오자마자 급히 빵부터 잡수셨던겁니다.

그래야 배고프시냐며 뭘 차릴까 고민해야할 필요가 없어지니....깊은 형님 마음때문에 정말 울었습니다.

말은 짧지만, 그 누구보다도 따뜻한 형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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