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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선수 석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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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화재의 레프트윙리베로, 시간차머신. 
  그의 수비와 시간차는 꽤 유명했는데 국대가 소집되고 여오현이 국대차출되면 삼성화재팀vs국대 연습경기할 때 삼성 쪽 리베로는 백업리베로가 아닌 석진욱이 했다고. 그렇다고 공격성공률이 낮지 않아서 삼성화재를 상대하는 팀들은 용병만 쳐다보고 방심하고 있다 시간차를 얻어맞곤 했다. 석진욱이라는 확실한 보조공격수가 있었기 때문에 삼성의 몰빵배구는 완성될 수 었다고 평가받는다.유일하게 극복한 외국인이 바로 페피치. 
  
  그나마 남아있던 석진욱 저평가하던 나머지 사람들은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83%의 리시브 성공률을 기록했고 4강 일본전에서 그가 나간 뒤에 한국 대표팀을 보고 더 이상 저평가를 하지 않았다고. 여담으로 상대선수의 모션을 캐치하는 능력(상대공격수가 크로스를 때릴지, 직선을 때릴지, 상대 세터가 어느쪽으로 공을 보낼 지 등 )이 매우 뛰어났다고 한다.카더라


  한양대를 졸업한 뒤 1999년 드래프트 파동을 겪으면서 삼성화재에 입단했고 삼성화재의 황금기(라고 쓰고 싹쓸이 암흑기라고 읽는다)를 보냈다. 2002년 세계선수권과 비슷한 시기에 열린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면서 군면제를 받았다. 당시 삼성화재는 삼성선수가 대거 포함된 98 방콕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 장시양을 중심으로 한 중국팀에게 패해 은메달에 그치면서 강제적인 세대교체를 할 위기에 놓여있었는데 이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으로 황금기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프로출범 이후 75%내외 리시브성공률을 기록. 안젤코 - 석진욱 - 여오현 - 최태웅 - 손재홍으로 원톱+디그중시 팀컬러로 삼성화재가 프로원년 현대에게 빼앗긴 우승을 되찾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시기 삼성화재의 붙은 별명은 공이 코트바닥에 떨어지지 않는 배구


  가빈화재 시대에 이르러 삼성화재는 박철우를 FA영입을 하게 되는데 석진욱은 단 2명밖에 없었던 보호선수 명단에 들어가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여오현과 함께 팀 리시브 점유율 75~80%를 전담하며 가빈-박철우 두 쌍포캐나다거포와 국대보조공격수를 확실하게 뒷받침, 삼성화재의 투아포-투리베 체제의 완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다재다능한 선수였지만 2004년부터 4차례나 수술을 하는 등 많은 부상경력이 많아 은퇴설이 계속 나오다가 2013년 은퇴를 했다. 13-14시즌 현재 코치로 러시앤캐시 베스피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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