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훈



그림입니다.

1968년 4월 10일 출생

- 1987년 빙그레 이글스 신고선수로 입단

- 1991년 한국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

- 현 한국 프로야구 통산홈런 1위

- 2005년 현역 은퇴

 

그림입니다.

1. " 인간승리 " 신고선수 신화

그가 세광고를 졸업할 당시..

우리나라 어느 구단도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프로야구 스카우터가 몇명 없었기도 했지만

전국대회에서 딱히 두각을 나타낸 적이 없기 때문이죠.

할 수 없이 그는 빙그레 이글스에 연봉 " 600만원 " 짜리 연습생으로 입단을 합니다.

처음에 그가 구단에서 주로 했던일은 배팅볼을 던져주는 .. 그런 선수였습니다.

그에게 기대를 거는 사람은 없었으며 미래또한 불투명했죠.

 

그는 딱 3년만 죽을각오로 뛰어보자!.

하고 죽을힘을 다하여 노력했습니다.

남이 쉴때 조금이라도 더 달리고, 손에 굳은살이 박히도록 배트를 휘두르고 또 휘둘렀습니다.

이 세상과 담을 쌓고 오로지 연습만했습니다.

 

게임에서 에러를 내는 날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대타로 삼진을 당할 땐 자신이 얼마나 한심했는지 몰랐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일어섰습니다.

다른사람이라면 포기했을만큼의 시련을 다 이겨내고 마침내 1987년 빙그레이글스의 주전 유격수로 발돋움합니다.

 

주전 첫 해 1987년 그의 성적은

 

0.270 8홈런 34타점으로 아주 나쁘진않았고,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이 때 장종훈에게 거는 기대도 동시에 올라갔죠

 

1988년 0.241 12홈런 57타점으로 빙그레의 준우승에 공헌했습니다.

 

이 2년간의 성적은 단순히 " 평범한 주전선수 "의 성적으로 볼 수 있겠지만

1989년부터 장종훈은 평범한 주전선수가 아니라 " 리그 정상급 타자 " 로 조금씩 발전해갑니다.

 

1989년 그의 성적은 0.254 18홈런 46타점 비록 타점은 88년에 비해 떨어졌지만

홈런을 18개나 쳐 내면서 4번타자였던 유승안과 함께 빙그레의 클린업트리오를 이끕니다.

 

그러다가 1990년. 장종훈은 한국 최고의 공격형 유격수로 거듭나게되죠.

당시 이름날리던 유격수가 삼성의 류중일선수정도로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 홈런치는 유격수 " 였던 장종훈의 발견은 꾀나 큰 발견이었죠.

1990년 그의성적은 0.290 28홈런 91타점

유승안선수가 그해 부진하자, 장종훈선수가 이글스의 4번타자로 군림합니다.

 

하지만 장종훈에게도 부상은 찾아왔습니다.

부상때문에 할 수 없이, 포지션을 유격수에서 1루수로 변경하고 91년부터 1루수로 출장하기 시작합니다.

수비적인 부담이 줄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1991년도 그는

 

0.345 35홈런 114타점 21도루 장타율 0.640  21도루

이라는 최고의 성적을 남기면서 또 다시 빙그레의 준우승에 엄청난 공헌을 합니다.

다시 1년이 흘러.. 1992년도 장종훈 선수는 또다시 야구팬들을 놀라게합니다.

 

0.299 41홈런 119타점 장타율 0.659  13도루

무엇보다 41홈런이라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한시즌에 40홈런을 넘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나 가능하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이런 생각을 단번에 날려버려준 장종훈선수였습니다.

우리나라 한시즌 최다홈런 기록도 갈아치웠습니다.

 

장종훈선수는 선동열선수와 함께 대한민국 최고의 야구선수로 이름을 날리게됩니다.

 

 

 

2. 공갈을 만든 슬럼프

장종훈 그에게 다시한번 시련이 찾아옵니다.

1993년 몇가지 부상을 안고 뛰었던 장종훈은

 

0.295 17홈런 58타점이란 기록을 남깁니다.

준수한 기록이지만

4번타자라기엔 너무도 작은 58타점..

그리고 장종훈이란 이름에 걸맞지 않은 성적..

 

1993년 겨울. 고생했던 무릎.

무릎에 부상이 생깁니다..

무릎부상을 안고 뛰었던 1994시즌.

 

0.267 10홈런 34타점이란 최악의 성적을 남기게됩니다.

하지만 부상의 늪에서 빠져나온 장종훈은 95년 보란듯이 재기에 성공합니다.

 

0.326 22홈런 78타점이란 성적을 올리면서 부활을 선포합니다.

하지만 3할시즌은 이게 마지막이었죠.

 

1996년엔 0.266 15홈런

1997년엔 0.293 22홈런

1998년엔 0.275 17홈런

으로 과거에 비해 떨어진 성적을 남깁니다.

물론 준수한 성적이지만 장종훈이란 이름에 걸맞지않았죠..;

97년은 4번타자로서의 성적을 남겼다곤 하지만

96년과 98년은 장종훈을 " 공갈 " 로 만들어버린 시즌이었죠.

 

3. 우승을 맛보다.

1999시즌..

장종훈선수가 준수한 성적을 올렸다고 한들, 한화에는 이영우나 송지만 등

새로운 선수들이 자신들의 입지를 굳혀갔습니다.

 

더군다나 1998년부터 새로 도입된 " 용병제도 " 때문에

주전자리가 더욱 힘들어졌죠..

 

한화의 암흑기때 마운드에 홀로 버텼던 정민철도 일본으로 간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장종훈과 송진우는 1999년이 정말로 마지막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1999년. 한화는 최강의 용병

 

덴 로마이어 / 제이 데이비스를 뽑습니다.

 

로마이어는 1999시즌 

0.292 45홈런 109타점의 기록으로 한화의 4번타자를 도맡았고

0.328 30홈런 35도루 106타점으로 외국인타자 최초

30-30클럽에 가입한 제이 데이비스.

 

이밖에 96년 데뷔한 이영우가 0.345라는 고타율과

이영우와 입단동기 송지만도 괴물급성적을보여주었으며

마운드에선 에이스 정민철의 18승, 이상목의 14승, 송진우의 15승을 기록했고

임수민과 강석천까지 타선에 큰 도움이 되면서

 

92년 롯데에게 한국시리즈에서 당했던 수모를 99년 한국시리즈에서 갚고

 

우승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한화팬들이 정작 기다리는 것은

" 장종훈의 부활 "

이었죠. 하지만 99년또한 장종훈선수는

0.284 27홈런 86타점으로 완벽하게 부활합니다.

 

 

4. 이별

 

2000년도도 0.264 28홈런 81타점

으로 1999년의 기운을 계속 이어나갔습니다.

 

2001년또한 0.273 15홈런 54타점 11도루로 좋은 성적을 거두었죠.

2002년도 0.248 12홈런으로 점점 하락세를 보이는 장종훈선수...

하지만 그도 사람이었습니다.

점점 나이가 들고, 체력은 약해졌습니다.

 

결국 2003 2004 2005년엔 3년간 홈런을 13개밖에 치지 못하면서

 

" 퇴물 "로 전락합니다.

 

하지만 2004년 장종훈을 늙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향해 만루홈런을 쳐내어 이글스팬들은 열광하기도 했죠.

장종훈 그는 떠날 때를 아는 선수였습니다.

 

2005년. 그는 은퇴를선언합니다.

그가 현역으로 뛰면서 남긴 성적은

 

1950게임 , 타율 0.281 , 340홈런, 1145타점, 122도루, 1354 사사구

MVP 2회, 홈런왕 3회, 타점왕 3회, 골든글러브 5회

 

저중 홈런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있습니다.

삼성의 양준혁선수가 2개차로 바짝 다가섰지만..

 

그림입니다.

은퇴경기때 둘째 타석에서 타격하는 장종훈..

그림입니다.

팬들에게 인사하는 장종훈.

[놀랍게 옆에있는 선수는 99년 용병 제이 데이비스.

한화에서만 99,00,01,02,04,05,06년을 뛰면서 이글스팬들의 머릿속에서 잊을 수 없는 최고의 용병이었다]

 

그렇게 경기가 끝났습니다.

은퇴식경기 9월 15일.

그는 안타깝게도 안타는 치지 못했습니다.

그림입니다.

그림입니다.

은퇴식당시 환호하는 팬들..

 

 

그림입니다.

" 진우형..저 먼저 갑니다 "

정말 눈물이 나게 만드는 송진우선수와의 포옹..

그림입니다.

행가래치는 한화선수들

 

한화구단은 장종훈선수의 백넘버

 

35번을 " 영구결번 " 으로 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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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훈



그림입니다.

1968년 4월 10일 출생

- 1987년 빙그레 이글스 신고선수로 입단

- 1991년 한국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

- 현 한국 프로야구 통산홈런 1위

- 2005년 현역 은퇴

 

그림입니다.

1. " 인간승리 " 신고선수 신화

그가 세광고를 졸업할 당시..

우리나라 어느 구단도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프로야구 스카우터가 몇명 없었기도 했지만

전국대회에서 딱히 두각을 나타낸 적이 없기 때문이죠.

할 수 없이 그는 빙그레 이글스에 연봉 " 600만원 " 짜리 연습생으로 입단을 합니다.

처음에 그가 구단에서 주로 했던일은 배팅볼을 던져주는 .. 그런 선수였습니다.

그에게 기대를 거는 사람은 없었으며 미래또한 불투명했죠.

 

그는 딱 3년만 죽을각오로 뛰어보자!.

하고 죽을힘을 다하여 노력했습니다.

남이 쉴때 조금이라도 더 달리고, 손에 굳은살이 박히도록 배트를 휘두르고 또 휘둘렀습니다.

이 세상과 담을 쌓고 오로지 연습만했습니다.

 

게임에서 에러를 내는 날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대타로 삼진을 당할 땐 자신이 얼마나 한심했는지 몰랐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일어섰습니다.

다른사람이라면 포기했을만큼의 시련을 다 이겨내고 마침내 1987년 빙그레이글스의 주전 유격수로 발돋움합니다.

 

주전 첫 해 1987년 그의 성적은

 

0.270 8홈런 34타점으로 아주 나쁘진않았고,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이 때 장종훈에게 거는 기대도 동시에 올라갔죠

 

1988년 0.241 12홈런 57타점으로 빙그레의 준우승에 공헌했습니다.

 

이 2년간의 성적은 단순히 " 평범한 주전선수 "의 성적으로 볼 수 있겠지만

1989년부터 장종훈은 평범한 주전선수가 아니라 " 리그 정상급 타자 " 로 조금씩 발전해갑니다.

 

1989년 그의 성적은 0.254 18홈런 46타점 비록 타점은 88년에 비해 떨어졌지만

홈런을 18개나 쳐 내면서 4번타자였던 유승안과 함께 빙그레의 클린업트리오를 이끕니다.

 

그러다가 1990년. 장종훈은 한국 최고의 공격형 유격수로 거듭나게되죠.

당시 이름날리던 유격수가 삼성의 류중일선수정도로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 홈런치는 유격수 " 였던 장종훈의 발견은 꾀나 큰 발견이었죠.

1990년 그의성적은 0.290 28홈런 91타점

유승안선수가 그해 부진하자, 장종훈선수가 이글스의 4번타자로 군림합니다.

 

하지만 장종훈에게도 부상은 찾아왔습니다.

부상때문에 할 수 없이, 포지션을 유격수에서 1루수로 변경하고 91년부터 1루수로 출장하기 시작합니다.

수비적인 부담이 줄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1991년도 그는

 

0.345 35홈런 114타점 21도루 장타율 0.640  21도루

이라는 최고의 성적을 남기면서 또 다시 빙그레의 준우승에 엄청난 공헌을 합니다.

다시 1년이 흘러.. 1992년도 장종훈 선수는 또다시 야구팬들을 놀라게합니다.

 

0.299 41홈런 119타점 장타율 0.659  13도루

무엇보다 41홈런이라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한시즌에 40홈런을 넘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나 가능하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이런 생각을 단번에 날려버려준 장종훈선수였습니다.

우리나라 한시즌 최다홈런 기록도 갈아치웠습니다.

 

장종훈선수는 선동열선수와 함께 대한민국 최고의 야구선수로 이름을 날리게됩니다.

 

 

 

2. 공갈을 만든 슬럼프

장종훈 그에게 다시한번 시련이 찾아옵니다.

1993년 몇가지 부상을 안고 뛰었던 장종훈은

 

0.295 17홈런 58타점이란 기록을 남깁니다.

준수한 기록이지만

4번타자라기엔 너무도 작은 58타점..

그리고 장종훈이란 이름에 걸맞지 않은 성적..

 

1993년 겨울. 고생했던 무릎.

무릎에 부상이 생깁니다..

무릎부상을 안고 뛰었던 1994시즌.

 

0.267 10홈런 34타점이란 최악의 성적을 남기게됩니다.

하지만 부상의 늪에서 빠져나온 장종훈은 95년 보란듯이 재기에 성공합니다.

 

0.326 22홈런 78타점이란 성적을 올리면서 부활을 선포합니다.

하지만 3할시즌은 이게 마지막이었죠.

 

1996년엔 0.266 15홈런

1997년엔 0.293 22홈런

1998년엔 0.275 17홈런

으로 과거에 비해 떨어진 성적을 남깁니다.

물론 준수한 성적이지만 장종훈이란 이름에 걸맞지않았죠..;

97년은 4번타자로서의 성적을 남겼다곤 하지만

96년과 98년은 장종훈을 " 공갈 " 로 만들어버린 시즌이었죠.

 

3. 우승을 맛보다.

1999시즌..

장종훈선수가 준수한 성적을 올렸다고 한들, 한화에는 이영우나 송지만 등

새로운 선수들이 자신들의 입지를 굳혀갔습니다.

 

더군다나 1998년부터 새로 도입된 " 용병제도 " 때문에

주전자리가 더욱 힘들어졌죠..

 

한화의 암흑기때 마운드에 홀로 버텼던 정민철도 일본으로 간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장종훈과 송진우는 1999년이 정말로 마지막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1999년. 한화는 최강의 용병

 

덴 로마이어 / 제이 데이비스를 뽑습니다.

 

로마이어는 1999시즌 

0.292 45홈런 109타점의 기록으로 한화의 4번타자를 도맡았고

0.328 30홈런 35도루 106타점으로 외국인타자 최초

30-30클럽에 가입한 제이 데이비스.

 

이밖에 96년 데뷔한 이영우가 0.345라는 고타율과

이영우와 입단동기 송지만도 괴물급성적을보여주었으며

마운드에선 에이스 정민철의 18승, 이상목의 14승, 송진우의 15승을 기록했고

임수민과 강석천까지 타선에 큰 도움이 되면서

 

92년 롯데에게 한국시리즈에서 당했던 수모를 99년 한국시리즈에서 갚고

 

우승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한화팬들이 정작 기다리는 것은

" 장종훈의 부활 "

이었죠. 하지만 99년또한 장종훈선수는

0.284 27홈런 86타점으로 완벽하게 부활합니다.

 

 

4. 이별

 

2000년도도 0.264 28홈런 81타점

으로 1999년의 기운을 계속 이어나갔습니다.

 

2001년또한 0.273 15홈런 54타점 11도루로 좋은 성적을 거두었죠.

2002년도 0.248 12홈런으로 점점 하락세를 보이는 장종훈선수...

하지만 그도 사람이었습니다.

점점 나이가 들고, 체력은 약해졌습니다.

 

결국 2003 2004 2005년엔 3년간 홈런을 13개밖에 치지 못하면서

 

" 퇴물 "로 전락합니다.

 

하지만 2004년 장종훈을 늙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향해 만루홈런을 쳐내어 이글스팬들은 열광하기도 했죠.

장종훈 그는 떠날 때를 아는 선수였습니다.

 

2005년. 그는 은퇴를선언합니다.

그가 현역으로 뛰면서 남긴 성적은

 

1950게임 , 타율 0.281 , 340홈런, 1145타점, 122도루, 1354 사사구

MVP 2회, 홈런왕 3회, 타점왕 3회, 골든글러브 5회

 

저중 홈런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있습니다.

삼성의 양준혁선수가 2개차로 바짝 다가섰지만..

 

그림입니다.

은퇴경기때 둘째 타석에서 타격하는 장종훈..

그림입니다.

팬들에게 인사하는 장종훈.

[놀랍게 옆에있는 선수는 99년 용병 제이 데이비스.

한화에서만 99,00,01,02,04,05,06년을 뛰면서 이글스팬들의 머릿속에서 잊을 수 없는 최고의 용병이었다]

 

그렇게 경기가 끝났습니다.

은퇴식경기 9월 15일.

그는 안타깝게도 안타는 치지 못했습니다.

그림입니다.

그림입니다.

은퇴식당시 환호하는 팬들..

 

 

그림입니다.

" 진우형..저 먼저 갑니다 "

정말 눈물이 나게 만드는 송진우선수와의 포옹..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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