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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해영

· 댓글개 · potatochip

마해영(우투우타)

 

생년월일 : 1970년 8월 14일

키 : 192cm, 몸무게 : 100kg

혈액형 : AB형

출신학교 : 대연국민학교 - 부산중학교 - 부산고등학교 - 고려대학교

 

-아마시절 수상-

 

대학춘계리그(최우수선수상, 홈런상, 도루상,1992)

대통령배실업리그(최우수신인선수상, 홈런상, 춘계리그 홈런상, 백호기 홈런상, 타점상)

서라벌기 타격상,추계리그(최우수선수상, 홈런상, 아마 베스트9상(아마기자단 선정),1994)

체육훈장(기린장 수상-제 32회 세계선수권 준우승 공로)

 

-아마시절의 마해영-

 

부산 대연국민학교 4학년.

학교 야구부 감독은 각 반을 돌면서 "야 야구하고 싶은 놈들 다들 운동장으로 모여!"

마해영을 포함한 100여명의 학생들이 운동장에 모이고, 그로부터 몇 일뒤 감독이 마해영에게 묻는다.

"해영이. 야구 하고 싶나?"

"네"

"내일까지 부모님 모시고 학교로 온나"

그 많던 학생들은 어느새 다 빠져나가고 열 여명 남짓한 학생들 중에서 마해영이 뽑힌것이다.

그리고, 그의 국민학교 6학년 시절, 한국에도 드디어 프로야구가 나타나게 된다.

운동부 치고 뛰어나게 큰 키와 체격조건은 아니었지만 누구보다도 깡 하나는 대단했었다.

실제로, 부산시내전체에서 타격 1위(0.545)를 달리면서 스타탄생을 예고하곤 했다.

그는 부산중학교 시절까지 1번 타자 겸 유격수를 도맡곤 했다.

흥미롭게도,

당시 영남에 이 마해영이 있었다면,

호남에 역시 마해영과 같은 타순, 포지션의 선수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동기 이종범 선수이다.

몇 년 뒤, 한국야구를 평정하게 될 괴물들이 각 지역에서 각각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었다.

마해영은, 부산고에 입학하면서 포지션을 변경하게 된다.

1년 선배였던 박계원이 유격 터줏대감으로 있었던 지라, 3루수로 자리 이동을 하게 된다.

고등학교 때는 기라성 같은 선배들 밑에서 거의 경기출전도 하지 못했지만,

3학년때는 4번타자 - 3루수로 거의 매경기 출전하게 된다.

대학행과 프로행 사이에서 고심하던 그는 결국 대학행을 택하고 고려대학교에 입학한다.

그리고 고려대 4학년이던 1992년, 롯데의 2차 1번 지명을 받고 상무에 입단하게 된다.

(계약금1억8천 - 연봉5천)

지금이야 신체검사에서 현역판정을 받아도 상무나 경찰청으로 빠질 수 있지만,

그 때는 프로야구선수들도 현역판정을 받으면 일반사병과 같이 근무해야만 했었다.

오랜 고민 끝에, 그는 아마추어 신분으로 상무에 입단하게 되고, 모든 것을 제대 이후로 잠시 미루게 된다.

 

 

 

년도

타율

경기수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도루실패

4사구

삼진

병살타

희생타

장타율

1995

롯데

0.275

126

476

131

26

4

18

87

76

16

6

67

82

13

8

0.460

1996

롯데

0.276

120

428

118

26

3

12

64

49

5

2

33

81

11

6

0.435

1997

롯데

0.259

126

452

117

22

3

25

75

61

6

5

48

76

12

5

0.487

1998

롯데

0.292

126

465

136

33

1

15

64

77

2

3

63

97

7

6

0.465

1999

롯데

0.372

132

503

187

38

4

35

119

111

6

9

69

65

11

7

0.672

2000

롯데

0.294

132

497

146

25

1

23

90

73

2

1

69

75

10

3

0.487

2001

삼성

0.328

133

470

154

18

0

30

95

86

1

1

73

82

13

4

0.557

2002

삼성

0.323

133

532

172

40

2

33

116

92

2

0

58

74

14

6

0.592

2003

삼성

0.291

132

502

146

25

0

38

123

90

1

1

66

89

22

5

0.568

2004

KIA

0.281

124

437

123

16

0

11

71

54

4

3

70

68

19

12

0.394

2005

KIA

0.266

94

338

90

17

0

12

60

46

0

0

43

66

13

6

0.423

2006

LG

0.270

80

282

76

12

2

5

28

30

1

1

29

54

7

5

0.379

2007

LG

0.071

11

28

2

0

0

1

3

2

0

0

4

9

1

2

0.179

2008

롯데

0.153

32

72

11

0

0

2

8

3

0

0

14

13

4

1

0.236

통산

-

0.294

1501

5482

1609

298

20

260

1003

850

46

32

706

931

157

76

0.497

 

 

-마해영이 KBO 역사에 남긴 기록들-

 

 

99년 타율 1위 (0.372)-역대 5위 기록

02년 최다안타 1위 (172개)

02년 지명타자 부분 골든글러브-역대 최다득표율(99.26%)

02년 한국시리즈 MVP

 

통산최다안타 역대 4위(1609개) 

통산 2루타 역대 4위(298개)

통산 홈런 역대 7위(260개)

통산 루타 역대 3위 (2710개)

통산 타점 역대 4위(1003개)

통산 득점 역대 8위(850개)

통산타율 역대 14위(0.294)

 

 

[거인의 등장] 

그림입니다.-0.275 131안타 2루타26 18홈런 87타점 16도루

위에서 말했듯이, 92년 지명되고 상무에서 병역의 의무를 다했던 마해영이 95년 모습을 드러냈다.

82년 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던 롯데 자이언츠 선수로는,

사상 3번째로 입단 기자회견을 가졌었다.(최동원,박동희에 이어서 타자로서는 처음)

전통적으로 좌타자들은 풍부한 편이었지만,

박정태를 제외하면 믿음직한 우타자가 없었던 롯데로서는 이 신인타자에게 거는 기대가 엄청났다.

팬들이라고 다르랴.

이미 3년전, 부산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졸신인이 모습을 보인다는 것 만으로도

부산은 열광했고 사람들은 경기장으로 몰려들었다.

마해영은 데뷔연도부터 4번타자/1루수 자리를 자갈치 김민호로부터 넘겨받게 된다.

하지만, 이런 기대들이 너무 부담스러운 탓이었을까.

마해영은 데뷔 첫 경기를 무안타로 물러나더니,

몇게임 동안 안타 하나도 신고하지 못했다.

하지만 김용희 전 롯데감독은 그를 끝까지 믿어줬고,

마해영 역시 그 신뢰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결국 12타석만에 첫 안타를 때려낸다.

상대투수는.

현재 삼성감독인 선동열.

그 이후 , 그는 팬들에게 보답이라도 하겠다는듯이 이 악물고 타석에 들어서며 그의 진가를 발휘한다.

특히, 입단 선배였던 임수혁과 MI포 일명 마림포를 발동시키면서

공포의 타선을 구축하게끔 된다.

그에 힘입어 팀 또한 정규시즌 3위를 차지하고, 한국시리즈에 3년만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룬다.

아쉽게 준우승에 그치긴 했지만, 그 해 롯데는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 본다.


-LG와의 인연의 시작?-

 

95년 당시 정규시즌 종료를 27경기 남겼던 시점에서 2위팀 베어스를 무려 6경기차로 따돌린 채

선두를 달리고 있었던 트윈스는 화요일부터 시작된 잠실구장에서의

주중 3연전 경기로 롯데 자이언츠를 맞았다.
루키 주형광이 자이언츠의 선발로 나왔던 것으로 기억하는 그 3연전 첫 경기.

트윈스는 톱타자 유지현의 선두타자 홈런을 비롯, 9회초 자이언츠의 마지막 공격이 시작되기 전까지

2대 1 한 점차 리드를 지키며 상승세를 계속 이어갈 좋은 흐름을 맞았고,
투고타저가 대세였던 당시의 야구에서 자이언츠가 역전할 분위기를 감지했던 사람은

많지 않았을 운명의 9회초가 찾아 왔다.
트윈스의 마운드에는 95시즌들어 무패행진속에 당시 40여 경기동안

단 한 번도 패하지를 않으며 경이적인 0점대 방어율까지 도전중이었던 철벽 클로저 김용수.
그 해 김용수는 요즘에 비유하자면 "한국의 마리아노 리베라"로 불려도 좋을만큼 철옹성의 모습을 보여

그가 나오면 경기가 그냥 끝났다고 이야기해도 좋을 만큼의 대단한 공을 던졌었다.
9회초 자이언츠의 선두타자는 루키 마해영.
데뷔 첫 해부터 18홈런, 87타점의 성적으로 돌풍을 일으켰던 그는 김용수의 공을 안타로 연결시킨 후

후속타자의 장타 때 홈을 밟아 경기를 연장전에 돌입하게 만들었다.

결국 그 경기는 연장 12회초로 자이언츠의 사실상 마지막 공격.

(당시 경기는 무제한 연장이 아니라 10시 30분의 시간제한이 있었다.)

2사 1루에서 김민재가 김용수의 공을 밀어쳐 우익선상에 떨어지는 결승타로 3대 2 역전승을 거두게 했었다.
그 경기의 역전패로 트윈스가 잃은 것은 단순한 1패가 아닌 10연패 이상의 의미가 담겼던

아주 뼈아픈 것이라 믿고 있다.
정규시즌 무패행진을 달리던 김용수가 뼈아픈 1패를 당했고,
팀은 그 경기 역전패의 후유증으로 인해 이어진 수요일과 목요일 경기에서 전패한 것은 물론

특히 목요일의 마지막 3차전은 18승을 달리던 최고 투수 이상훈을

2진급 선발인 윤동배와 맞대결시키고도 어이없는 완봉패를 당해 그야말로 팀분위기 초상집 분위기로...
곧바로 이어진 한화와의 주말 3연전도 1승 2패로 마감하며 주중성적 1승 5패를 기록하는 사이 

5승 1패를 기록한 베어스에게 6경기차까지 벌려 놓았던 게임차를 불과 일주일 사이
2경기차까지 좁혀지게 만들며 추격권에 잡히더니,

급기야는 반경기차로 한국시리즈 직행티켓을 베어스에게 내주고 만다.
끝이 아니었다.

플레이오프에선 트윈스 팬들로선 기억조차 하기 싫을 악몽의 3차전 역전패와

대승 분위기서 자멸한 4차전을 연달아 내준 걸 극복하지 못한 채

자이언츠에게 한국시리즈 진출권마저 내주고마는 결과를 낳게 된다.
팀이 정규시즌 우승을 놓치자 20승, 5패의 성적을 남긴 이상훈은,

타율 0.272, 25홈런, 101타점을 기록한 베어스 김상호에게 MVP 투표에서도 밀리게 된다.
그런 여러가지 반전의 출발점은 철옹성 김용수에게 안타를 뽑은 후 동점을 만들고

연장전에 들어가 자이언츠의 역전승을 이끌게 한 마해영의 뼈아픈 안타 한 방이 결정적이었다는 생각이다.
야구란 흐름의 경기이고 거기서 김용수가 세이브를 기대대로 올렸더라면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의 우승은 베어스가 아닌 트윈스의 차지가 될 수도 있다고 믿으니깐.

필자의 이런 생각이 약간 지나친 비약과 과장이라 생각하는 분들도 많으리라 본다.

더군다나 당시 야구를 못 봤거나 크게 관심이 없던 타팀팬들일수록.

쉽게 생각해서,

올시즌 후반기 한동안 분위기를 타고 2위 두산을 턱밑까지 추격했던 롯데를 생각해보자.

역대 최고의 상승세를 타고 있던 롯데와 달리 올림픽 브레이크 이후 크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두산.

두 팀은 사직 3연전을 갖게 된다.

그 1차전에서 롯데는 뼈아픈 역전을 당하면서 분위기가 가라앉고,

2,3차전 모두 두산에게 내주고 만다.

그 이후 롯데는 2위싸움에서 물러설 수 밖에 없게 되고,

나머지 경기도 크게 재미보지 못하고(몰론 PS를 위한 체력안배 차원도 있었겠지만)

PS에서도 제대로 힘한번 쓰지 못하고 삼성에 3연패를 당하면서 물러난다.

만약, 그 두산과의 1차전에서 롯데가 그대로 승기를 잡았더라면 ...

야구는 모른다. 분위기 한번 타면 다윗도 골리앗을 콜드로 잡을 수 있는 거고.

말이 길었지만, 여튼 마해영과 LG의 인연 아니, 악연은 이 때부터 시작된다.

 

 

그림입니다.

<95년 한일 슈퍼게임에 참가한 롯데 선수들. 왼쪽부터 전준호-공필성-마해영-주형광>

-마해영은 신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슈퍼게임에 초대받았다.

 

그림입니다.그림입니다.

<95년 마해영>

-위 롯데 유니폼은 93~95년의 롯데의 경기 유니폼이었다.

마해영의 데뷔연도를 생각해본다면 이 사진은 확실히 95년도.

 

[자라나는 거인] 

그림입니다.-0.276 118안타 2루타26 12홈런 64타점

96년 롯데는 완벽하게 돌아온 박정태와 김응국-마해영-임수혁으로 이어지는 균형잡힌 타선으로,

팀특점,팀타율 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면서 다시 한번 우승을 노리게 된다.

특히 주형광은 crazy 스텟을 찍어주면서(다승1위,탈삼진1위,승률2위) 마운드도 높은 편이었다.

다만, 3,4,5선발의 부족함과 계투와 마무리에서 부족함을 드러내면서

그 해 롯데는 결국 5위로 시즌을 접게 된다.

 

그림입니다.-0.259 117안타 2루타22 25홈런 75타점

그림입니다.-0.292 136안타 2루타33 15홈런 64타점

97,98년의 마해영에 대해서는 딱히 언급할 만한 사항이 없다.

팀의 4번타자겸 주전 1루수로 확실하게 자리 잡긴 했으나,

부족한 건 아니지만 어딘가 약간 아쉬운 느낌을 늘 줬었다.

데뷔연도에서 잘 치고, 잘 달리고, 수비 잘하고 그런 그의 모습이..

다시 보여줄 수는 없는걸까 하고 부산 롯데팬들은 기다리고 또 기다렸었다. 

 

[완벽하게 날아오르는 거인] 

그림입니다.-0.372 187안타 2루타38 35홈런 119타점

드디어 찾아온 99년.

99년은 롯데에게, 롯데팬에게, 마해영에게 뜻깊은 연도가 아닐 수 없다.

펠릭스 호세라는 역대 최강의 용병이 롯데에 가세하고,

처음으로 주장을 맡은 캡틴 박정태, 그리고 그의 모든걸 보여주려는 듯이 날아다니는 마포.

김응국,임수혁,김대익,김민재 등의 타선도 쉴새없이 터져주었다.

마해영은 99년 시즌에서,

타율1위-역대5위,최다안타 2위, 홈런 6위, 타점 3위, 득점3위, 장타율2위, 출루율2위라는

말 그대로 괴물스텟의 진수를 찍게 된다.

롯데 또한 당시 팀타율1위(0.291), 팀방어율 1위(4.18), 팀홈런 4위(145)라는 무서운 성적을 거두고,

팀승률 0.591로 드림리그 2위(매직/드림 통합 2위)를 차지한다.

(아쉽게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패하면서 두산에 정규시즌 우승을 뺐김)

이 승률은 여전히 롯데 역대 최고로 남아있다.

워낙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지만, 빠질 수 없는 99 PO 7차전.

호세의 홈런 이후, 대구관중들의 오물투척으로 경기 중단 사태에 처했지만,

간신히 분위기를 추스리고 돌아온 GIANTS.

타석에서는 마해영.

지고 있는 상황에서의 흥분은 팀에 전혀 도움 될 게 없었다.

꽝 소리가 난 후 모두의 시선은 그 타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좀처럼 세레모니나 안타나 홈런 이후 과격한 행동이 없던 그였지만,

그날은 누구보다도 흥분해 있었다.

 

그림입니다.그림입니다.

<1.경기가 재개된 직후 플래쉬 터진 마포> - 저 강펀치는 누구를 향한 것이었을까

<2.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분노의 헬멧 세레모니>

-패대기친 헬멧. 자신의 키보다도 더 높이 튀어버린다.

 

그림입니다.

<지면 안돼! 지면 안돼!>

-홈런치고 덕아웃으로 들어와서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흥분한 상태의 마해영.

 

경기는 결국 롯데가 가져가게 되고, 한국시리즈 진출도 롯데 손에 쥐어졌다.

아쉽게 95년에 이어 다시 준우승 트로피에 만족해야 했지만,

당시 마해영을 필두로 한 롯데 선수들의 투지 하나만큼은 여전히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다.

 

그림입니다.

<99년 당시의 롯데 클린업트리오. 왼쪽으로부터 호세-박정태-마해영>

-당시는 몰론이고, 지금까지도 거의 최고로 손꼽히는 클린업 트리오 중 하나이다.

 

그림입니다.-0.294 146안타 2루타25 23홈런 90타점

 

-선수협-

99년 시즌이 끝나고, 한국프로야구계에는 큰 물살이 흐른다.

바로 프로야구 선수협의회(선수협) 파동.

당시 롯데는 마해영,박정태,문동환 등을 비롯해 총 14명의 선수가 참여하게 된다.

이들은 겨우내 동계훈련까지 포기하고, 연봉계약에서까지 강경책을 고수한다.(뒤에 계속)

 

그나저나 마해영은 동계훈련에도 불참하고 제대로 된 훈련도 하지 못하고 시즌에 임하게 된다.

00년 롯데 타선은 호세도 없었고, 작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분위기도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마해영 역시,

작년에 그 성적을 거두고도 골든글러브와 MVP에서 이승엽에 밀리게 되자,

그 특유의 정확도 보다는 무리하게 한방을 노리는 트레이닝을 하게 된다.

지나치게 근력 위주 운동을 하다 보니 그 결과, 

타율도 전해에 비해 급격히 떨어지고 ..'상대적으로' 평범했던 한 해를 마무리 하게 된다.

팀 역시, 2년 연속 PS에 진출했다는 것 외엔 별다른 성과는 이루지 못한다.

 

그림입니다.-0.328 154안타 2루타18 30홈런 95타점

 

마해영은 이적 첫 해부터 다시 3할 타율로 올라서면서, 팀의 정규시즌 1위를 이끌게 된다.

(2위 현대에 7게임차 앞선 정규시즌 우승.)

하지만,

한국판 밤비노의 저주 .. 삼성에도 뿌리박힌 걸까.

누구나 다 삼성의 우승을 점쳤지만,

정규시즌 3위팀으로 한국시리즈에 올라온 두산에 패하면서 우승을 내주고 만다.

(정규시즌 3위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은 92년 롯데와 더불어 단 두번 밖에 없었다.)

여하튼, 그는 기존 삼성팬들의 우려와 걱정 속에서 충분히

이적 첫 해 제 역할을 다 해주었다고 본다.

 

-선수협-

앞의 선수협 얘기에서 계속해서.. 

구단은 구단대로 이에 강력하게 맞선다.

롯데 선수 중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선수협에 남은 선수는 박정태와 마해영 둘이었다.

그 중 희생자는 마해영이 되었다.(박정태도 그 후 오랫동안 구단의 눈총은 받게 된다.)

명목상으로는 어디까지나 전략보강을 위한 트레이드지만,

누가봐도 뻔한 괘씸죄 적용으로 인한 반강제성 트레이드였다.

1월 31일, 마해영은 김주찬/이계성과 함께 삼성과 2:1트레이드의 제물이 되고 만다.

토사구팽..최동원 하나로 부족했을까.

정말 존경해 마지 않는 이 롯데 구단 측의 현명한 판단이었다.

 

 -마해영의 저주-

 

이를 마해영의 저주라 불러도 이상할게 전혀 없을 듯 하다.

실제로 , 필자도 그렇게 확신하면서 지내왔었고,

올해 마해영이 돌아온 연도에 롯데의 꿈에도 그리던 4강진출이 되었으니 말이다.

(몰론 그게 우연의 일치일수도, 한동안 묻혀있었던 롯데 어린선수들의 잠재력이 폭발한 거라 하더라도.)

마해영이 이 보복성 트레이드의 제물로 바쳐진 뒤,

롯데의 앞길 역시 평탄하지 않았다.

롯데는 2001년 마포가 떠나간 그 해 8위 달성.

당시만 해도 롯데팬들은 "에이..SK에 이은 승차없는 꼴지인데 뭐.. 내년에 잘하면 되지"

하지만 그 다음해도 8위.

마해영이 롯데를 떠난 그 해부터 4년 내리 꼴지.

8888577의 역사가 쓰여지고 있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뒤에 또 나오겠지만,

마해영이 삼성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던 3년 동안, 롯데는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밑바닥에 있었다.

이 저주의 절정기는..마해영의 굿바이 홈런으로 삼성의 2002년 우승 당시,

롯데는 승률 2할대(0.265)라는 암담한 성적으로 시즌을 접게 된다.

 

그림입니다.-0.323 172안타 2루타40 33홈런 116타점

 

-다시 만난 마해영과 LG-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이라 봐도 무방했을듯한 LG와 삼성의 KS.

객관적인 전력은 비록 4위에 머무른 다윗 LG였지만,

그들의 V3를 향한 열정은 누구보다 뜨거웠고 김성근 감독 아래 돌아온 야생마와 김재현이 버텼다.

그에 반해 삼성은 거포 양준혁이 돌아오고 강동우가 화려하게 부활해주면서,

삼성 역대타순에서 다시 없을 최강의 라인업을 선보인다.

라이언킹 이승엽의 극도의 부진 속에서도 강동우의 활약과,

마해영의 5할에 가까운 KS타율에 홈런 2방이 더해져 3승2패로 KS마지막을 남겨둔다.

운명의 6차전.

4점차로 뒤지고 있던 8회 삼성공격에서 마해영의 안타와 득점으로 한 점 차로 따라붙는다.

점수차는 3점차에 9회 삼성공격.

위에서 말했지만, 극심한 타격부진 속의 이승엽이 제대로 한 건 터뜨린다.

스리런 동점홈런.

그리고 구원으로 나온 최원호를 상대로 , 마해영의 goodbye 홈런.

삼성의 한국시리즈 첫 우승. 


그림입니다.그림입니다.

<삼성의 한국시리즈 첫 우승 당시, 한국시리즈 MVP로 선정된 마포>

-그 혼자서만 해낸 성과는 아니라더라도 삼성의 20년 숙원이었던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리는데

그가 일등공신이 되었다는건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리라.

 

그림입니다.-0.291 146안타 2루타25 38홈런 123타점

 

디펜딩챔피언 자리를 사수하기 위해 사자들은 다시 한번 이를 갈고 시즌에 임한다.

여전히 그들은 리그 최강의 타선이었다.

나오는 상대타자들마다 knock out시키면서 정규시즌 1위를 달리게 된다.

마구 유저라면 모두 알고 있듯이 이승엽의 엘리카드가 있던 해가 바로 03시즌이다.

카드등급에 맞게, 당시 홈런 신기록 행진을 세워가던 이승엽의 뒤엔,

리그 최고의 우타 마해영과 좌타 양준혁이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후반기로 갈수록 마해영의 방망이는 무뎌지기 시작한다.

실제로, 타순도 점점 하위타순으로 내려가 8번으로 나오는 날도 종종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결국, 삼성은 1위자리를 채 고수하지 못하고 3위로 시즌을 마무리하게 된다.

그래도 PS에선 다들 살아나겠지 라고 믿는 팬들.

준PO에서 만난 SK.

1차전에서 6:5로 뒤지고 있던 삼성의 무사 1,3루 기회.

어이없게도 이 황금기회에서 삼중살이 나오고 만다.

모든 비난의 화살은 3루 주자였던 마해영에게 쏠리고..

그 때문이었을까? 마해영은 2차전에서도 수많은 찬스를 날리고,

결국 삼성 역시 준PO에서 탈락하고 만다.

 

-오해와 앙금-

 

마해영 시리즈라고 불리워도 지나치지 않을 2002 한국시리즈.

당시 많은 삼성팬들은 월드컵의 열기를 뒤로 두고,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 감격의 눈물을 흘렸으리라.

필자 역시 롯데팬이지만,

당시 이 마해영의 한방을 보고 눈시울이 붉어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마해영은 어디까지나 삼성人이 아닌 삼성人이었다.

마해영의 비공식 홈페이지 마49 에서 그의 인터뷰 내용을 따 본다.

 

"정말로 감동했습니다..

이제야 저를 삼성인으로 인정해주시는 거 같아 너무나도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실은 그전에는 이런저런 소외감으로 외롭기도 했었거든요.

솔직히 그 전에는 부산팬들이 90%였고, 팬클럽 회원수도 그렇게 많지 않았었는데

이제는 삼성팬들이 저를 응원해주시는 것 같아 너무나도 기쁩니다."

 

위 인터뷰 내용에서 대충 짐작하시다시피,

그는 고향팀 롯데를 떠날 때부터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아니 , 오히려 힘들고 외로웠다.

선수협의 주축이었기에 타의적이고 반강제적으로 트레이드 되었기에.

더군다나,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당시의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의 앙금은 여전히 큰 상태였다.

올해 거의 10년만에 다시 만난 PS에서도 두 팀의 신경전이 그렇게 날카로웠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99년의 "그 사건" 에 채 몇 년도 지나지 않은 당시는...

마지막으로 예나 지금이나 스타 플레이어가 넘치는 삼성.

당시에도 당대 내노라하는 거물급 스타들이 여기저기 포진해있었다.

고향팀에서야 귀하게 신인 4번, 1루 주전으로 꿰찼지만

타팀에서는 경쟁상대 한 명이 생긴 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마해영 선수의 "승엽이에 뒤지지 않는 타자가 되겠다는" 인터뷰 내용이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또 오해를 불러 일으켜서,

마해영의 순수한 근성은 구단측과 라이온스 팬들에게서 다시금 멀어지게 만든다.

실제로 타팀선수지만, 여전히 마해영 선수의 팬으로 남았던 나는

이런저런 삼성기사들을 찾아보며 스크랩했었지만 여실히 사실로 남아 있다.

공갈포..개인기록만을 신경쓴다..덕아웃에서 이기주의적 행동만을 일삼는다.. 둥의......

 

지금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누굴 탓하고자 하는게 아니다.

나도 부산/경남 토박이기에, 이 프랜차이즈 스타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타 지역에서 온 선수에 대한 알게 모르게 생기는 이질감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막말로 당시 롯데에 이승엽이나 양준혁이 트레이드 되어 왔었다면

롯데팬들은 두 팔 벌려 이 선수들을 따뜻하게 맞이 할 수 있었을까?

 

 

그림입니다.-0.282 123안타 2루타16 11홈런 71타점

 

자기를 알아주는 구단에서 늘 뛰고 싶다던 마해영.

3년동안 자신이 삼성에서의 활약을 정리하면서 그에 응당한 보수를 청한다.

구단측과 마해영 측의 의견대립은 너무나도 컸다.

위에서 길게 얘기했던 쌓이고 쌓였던 앙금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삼성은 3년 20억을 제안했었다.

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그 20억 속에는 마이너스 옵션 3억이 있었다는 점.

실제로 보장된 금액은 17억이었다.

삼성이 2001년 시즌이 끝난 뒤, 양준혁과 계약한 금액은 4년 23억 2천만원이었다.

(플러스옵션 4억, 마이너스 옵션 6억 - 보장액 17억 2천)

그런데 당시 양준혁은 LG에 있었기에 LG에서 양준혁을 데려오기 위해서,

삼성이 실제로 쓴 금액은 40억원에 다다른다는 말이 된다.

이런 전례로 보았을때, 마해영 입장에서는 서운할 수 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당연히..

또한 당시에도 이런 말이 돌기는 했었지만..

원래 당시 삼성은 이승엽을 잔류시키고, FA에서 정수근을 잡으려고 했었다.(나중에 롯데에 뺐기긴 했었지만)

그 정수근을 잡는다면, 양준혁은 외야에서 지명으로 내려와야 될텐데,

그렇게 되면 마해영과 포지션이 겹치게 되는 문제가 있었다.

삼성입장에서 누구를 잡을껀지는 두 말 할 필요가 없을 것.

여하튼, 삼성입장에서는 급한 입장은 전혀 아니었기에,

일부러 마해영에게 섭섭하다 싶을 정도의 제시안을 낸 것이었다.

 

소속팀의 우선협상이 끝나는 그 날 밤 12시.

그 시간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KIA 타이거즈의 구단관계자와 협상을 시작한 마해영은,

불과 3분만에 계약서에 OK사인을 찍는다.

계약금액은 4년 28억원.

 

"저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돈 때문에 삼성을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저의 자존심 때문에 떠나가는 것입니다.

제 가치를 알아주는 구단에서 한게임이라도 더 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정든 삼성 구단이었지만, 삼성은 제 가치를 알아주지 않았고,

의도적으로 제 자존심까지 깎아내렸습니다."

 

뭐 이런 계약건을 보고, 혹자들은 마해영이 돈을 밝히는 ... 언론플레이에 능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자 입장에선 그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금액으로 봐도,

1년 연봉으로 따지면 삼성측이나 KIA측의 금액차이는 크지 않다.

다만, 그가 삼성의 첫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점,

3년동안 충분히 4번으로서 역할을 다 해줬다는 점을 볼땐...모자랐으면 모자랐지,

삼성측의 제시액수가 많은 편은 절대로 아니라고 하고 싶다.

 

 이적 첫해의 성적으로는 크게 나쁘지는 않았지만(세자리수 안타, 두자리수 홈런)

그의 롯데시절과 삼성시절의 모습을 기대하던 KIA팬들에겐 다소 실망스런 모습이었다.

 마해영은 2004년, 데뷔 이후 처음으로 2군으로 내려가게 된다.

당시 유남호 KIA 감독 대행의 말 처럼,

4강 싸움이 절실하던 KIA입장에선 어떻게 보면 당연한 조치였겠지만

noblesse oblige 차원의 지시였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그 때부터 마해영은 꼬이기 시작했다.

여하튼, 마해영 그 자신으로서도 롯데-삼성을 거치면서 가장 암담한 시즌이었을 것이다.(그 때까지로는)

 

그림입니다.

<타이거즈의 마해영>

 

그림입니다.-0.266 90안타 2루타17 12홈런 60타점

 

2005년 전반기에는 그의 성적이 크게 나쁜 것은 아니었다.

전반기까지 타점이 5위였고 홈런도 11개나 쳤었다.

그러다 후반기에, 감독이 서정환 대행으로 교체되면서 다시 2군행.

이리저리 오다니다 결국 2005년 11월 LG로 트레이드 되고 만다.

 

-어떤 이유에서의 트레이드 였나?-

 

후...이 내용을 여기서 다루는게 맞는지 어떨지도 잘 모르겠다.

괜시리 흥미유발을 넘어서서 감정상하는 분들도 생기진 않을지..

 2005년 KIA는 창단 처음으로 꼴지를 하게 된다.

언론이나 구단측은 세대교체의 당위성을 주장했었고,

그에 응당하는 선수는 프랜차이즈 선수도 아닌 막 이적되어 온 마해영이었다.

한동안 경기에 뛰지 못하고 2군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마해영의 홈페이지에는 팬들의 "어디가 아픈거냐?" 는 질문들이 자주 올라온다.

(당시 언론으로는 마해영이 부상이라고 나왔었음.)

마해영은 "부상이 아니라 세대교체 문제로 인해 출전기회가 없어서 2군에 있다"라고,

꽤 장문의 글을 올렸던 적이 있다.

문제는..

그 글 가운데, “인격적으로 존경 받고 능력이 뛰어난 분이 와서 팀이 강해지고 좋은 성적을 냈으면 한다”

라는 문장이 들어 있었다.

마해영의 한참 후 인터뷰에서는 당시 감독이 대행체제였기 때문에,

아무런 사심없이 글을 썼다고는 하지만 그게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만다.

모 일간지 기사가 그 문장만을 화두로 삼아서 기사를 내 버린 것이다.

그게 보도가 되면서 서정환 대행과의 관계도 틀어질대로 틀어져 버리고..

그 일이 기폭제가 되어서 결국 마해영은 LG로 트레이드 되고 만다.

 

그림입니다.그림입니다.

<2005.5.28 상대투수는 조용준. 9회 2사만루 초구 역전그랜드슬램>

 

그림입니다.-0.270 76안타 2루타12 5홈런 28타점

 

05시즌이 끝나고, LG와 KIA는 3:3 트레이드에 합의하게 된다.

(KIA의 내야수 마해영,서동욱 과 투수 최상덕<->LG의 투수 장문석,손상정과 내야수 한규식.)

롯데와 삼성,KIA를 거쳐서 네번째 종착지였다.

비록 최상덕과 장문석의 트레이드에 거의 끼워간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몇몇 LG팬들은 (비록 그 전성기는 지났다고는 하나)

여전히 한방있는 선수가 온다는 것만으로도 어느정도의 기대는 하고 있었다고 본다.

실제로 LG에선 제대로 된 홈런타자 한 명이 없었기에,

그에겐 높은 타율보다는 중요한 순간에서의 한 방을 기대하는 팬들도 많았으리라.

하지만, 그의 타격 침체기는 생각보다 오래갔었다.

06년을 흐지부지 하게 보내고, 07년을 맞았지만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07년 카드는 없습니다.>

 

[2007년 6월 5일 일간스포츠]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라면 차라리 방출해 달라." (LG 마해영)
"방출할 수 없다. 그에 따른 손해는 감수하겠다." (LG 프런트)
LG는 마해영의 웨이버 공시 요구에 "방출해 줄 수 없다"고 못박았다. 그 배경을 놓고 양 쪽이 극한 대립을 하고 있다.
김연중 LG 단장은 5일 "지난 1일 마해영이 방출해 줄 것을 요구해 왔다.

그는 연봉 4억원을 받을 만큼 구단의 기대를 받는 선수다.

마해영은 계약기간 동안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김재박 LG 감독도 "(마해영 방출 여부는) 구단이 결정할 문제"라며 구단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뜻을 밝혔다.
마해영은 지난 4월24일 타율 7푼1리로 부진해 2군으로 내려갔다.

2군에서도 좀처럼 출전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1군에서는 불러줄 기미를 보이지 않고 2군 체류가 장기화되자 다른 팀에서 새 출발할 수 있도록 요청한 것이다.
마해영은 5일 원당에서 벌어진 현대 2군과의 경기를 마치고 김 단장과의 전화통화에서 방출 불가를 통보받았다.

김 단장은 "마해영에게 구단의 방침을 설명했다"고 전했다.

선수 요구에 따라 방출을 허락한 사례가 없고, 다른 팀으로 이적해 좋은 성적을 낼까 경계하기 때문이다.
또 금전적인 문제도 묘하게 얽혀 있다.

마해영은 2군으로 떨어진 뒤 규약에 따라 연봉 300분의 1 가운데 50%를 감액당하고 있다.

마해영이 1군에 있다면 10개월 동안 매달 4000만원을 받지만 2군 월급은 약 2000만원이다.
LG가 마해영을 방출해 7일 내에 다른 팀이 그를 데려간다면, 그 팀에서 마해영의 연봉을 부담해야 한다.

마해영이 갈 곳을 찾지 못한다면 올 시즌 뛸 수 없고, LG는 연봉 4억원에 해당하는 잔여 월급을 줘야 한다.

그러나 김 단장은 "돈 때문에 방출을 못해주는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마해영이 잔여 기간 동안 매달 4000만원을 받기 위해 방출을 요구했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이에 마해영은 "나는 방출되면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현재 2군에서처럼 돈을 받는 것으로 잘 못 알고 있었다.

새 길을 찾게 해 달라는 것이지 돈 때문에 방출을 요구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라고 항변했다.
방출 요구 뒤 4일이 지났지만 서로의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사태가 매듭지어지려면 한 쪽이 양보해야 되는데 현재로서는 둘 다 뜻을 꺾을 것 같지가 않다.

-마해영의 LG 방출설, 웨이버 공시요구 관련 언급은 생략하겠습니다.

제가 이런 글을 쓰는 것만 해도,

어디까지나 롯데팬으로서 제 사견이 들어갈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의 생각도 다들 다르실 거라 생각됩니다.

글 읽으시는 분들이 알아서 해석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림입니다.


그림입니다.-0.153 11안타 2홈런 8타점


그림입니다.그림입니다.

<1.안영명의 142km 바깥쪽 직구를 그대로 당겨서 넘긴다>

-앞선 세 타석에서 모두 무기력하게 덕아웃으로 물러났지만, 마지막 타석에서 플래쉬.

 2007년 4월 7일 마지막 홈런 이후 근 1년만의 손 맛.

<2.제리 로이스터감독과의 뜨거운 포옹>

 

서른 여덟의 연봉 5천짜리 7번타자로 롯데에 돌아온 마포.

 

어린 시절, 조그만한 손을 들면서 그의 이름을 연호했었다.

무척이나 커 보이고, 정말로 GIANTS 다운 GIANTS라고 여겼었다.

그의 이름 석자가 그 넓디 넓은 사직구장을 가득 메우고 우리는 그를 사랑했었다.

그런데,

개막전에 선발로 출전하지도 못하고 덕아웃에 멍하니 앉아있는 그.

카메라는 계속 그 모습을 잡아주는데 왜 그렇게 작아 보였던지.

저 컴백홈런을 때려낸 3월 30일.

무던히도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졌었다...

 

그림입니다.

<모두가 아시다시피, 올해 그의 성적은 암담하기 짝이 없다.>

-롯데에 다시 돌아올때도 모두가 크게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그 기대에 마저도 못 미쳤다고 밖에 할 수 없을 듯 싶다.

이젠 예전의 좌승엽 우해영 의 시대는 다시 돌아 올 수 없으니..

 

그림입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08올스타 선정투표>

-마해영은 동군올스타 4번타자로 선발로 나와 톡톡히 제 몫을 해주면서, 그의 부활을 꿈꾸게 해주었다. 

 

 그림입니다.

<경기를 역전승으로 이끈 롯데선수들 가운데의 환한 모습의 마해영>

-한동안 마줌마 열풍을 불러오기도 했었다.

 

-마해영 방출-

 

씁쓸하다.

올시즌 초반 그 모습과, 올스타전을 전후로 해서 가능성을 믿어 의심치 았았던 마포.

롯데는 8년만의 4강에 오르고,

부산은 난리가 났지만 그는 그 선상에서 한참 떨어져 있었다.

결국 시즌이 끝나고 '방출' 기사가 났었다.

롯데에서도 이번만큼은 어떤 비난받을 행동도 없었다고 본다.

확연하게 프로에서 살아남지 못할만큼 실력이 하향되었고,

본인에게 코치직을 알아봐준다고 제안도 했었고,은퇴식도 얘길 꺼냈었지만,

이를 거절한 것은 마해영이었다.

롯데맨들이 기대했던것은 ,

3할 30홈런 100타점의 99년 마포포스가 아니었다.

다만, 끝없는 끈기와 노력, 그리고 노장의 투혼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우리의 기대에 못 미쳤었고, 구단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후기-

 

82년 프로야구가 개막한 이후로,

3년 연속 30홈런 이상 친 선수는 오직 세 명에 불과하다.

좌타에 이승엽, 우타에 우즈 그리고 마해영.

가을야구에서도 이만큼 강력한 포스를 보인 선수가 또 누가 있을까.?

정규시즌에 좀 약했던 투수가 나오더라도,

그는 가을잔치만 나갔다하면 급 크레이지 모드를 보여주곤 했었다.

올시즌, 롯데의 PS 라인업을 보면서,

저 자리에 ... 저 많은 선수들 사이에서 마해영 이라는 이름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채 10년도 되지 않았던 그 시절에는 ,

투수들은 이 선수를 피하느라 바빴고, 그는 기록 세우기에 바빴으니..

이제 마해영의 저주는 풀렸다고 본다.

한동안 롯데의 발목을 붙잡으면서,

수많은 코칭스텝을 물갈이하고, 선수단도 새롭게 다졌지만

늘 하위권에서 맴돌던 롯데 역시 올해를 기점으로 해서 , 절대로 쉬운 상대는 아니게 되었다.

그런 롯데에서 내년부턴 더 이상 마해영을 볼 수 없다는 것도 안타깝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듯이, 세월앞에 ,나이앞에 장사 없다고는 하지만...

올시즌 필자가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연봉 5천짜리 7번타자가 뭐 잘하면 얼마나 잘하겠어?

로이스터는 뭐하는거냐? 저런 타율 치고 있는 애를 버젓이 후보로 올려놓고..

차라리 2군애들을 데려다 쓰자

맞는 말이었다.

계속 하위권에 있었던 터라, 괜찮은 유망주들을 다량 보유한 롯데이기에..

차라리 그 자리에 포텐셜 있는 어린 선수들을 쓰는게 현실적으로도 맞았다.

다만, 어린 팬들이 마해영을 보면서 쟤가 뭐라고...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게 늘 마음에도 걸렸었다.

 

마해영. 다시는 롯데 유니폼을 입은 그를 볼 수는 없다.

좋은 모습으로 선수생활 마무리 하길 바라면서 글을 이만 마친다.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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