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1. Home
  2. 스포츠
  3. 정민철

정민철

· 댓글개 · potatochip

정민철


1972년 3월 28일생

- 대전고졸업

- 1992년 빙그레 이글스(전신 한화) 입단

- 2000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 2002년 한화이글스

 

정민철에 대한 모든 것

이름 : 정민철

생년월일 : 1972년 3월 28일

신장 : 187cm 체중 : 88 -89kg

혈액형 : AB형

출생지 : 광주 광역시 광산구 송정동

출신교 : 대전 신흥 초등 - 충남 중 - 대전 고

가족 관계 : 송춘복씨의 3남중 막내

결혼 : 1999년 3월 14일 김경아씨와 결혼

성격 : 낙천적 ( 본인 생각 )

종교 : 불교

포지션 : 투수 ( 우투 좌타 )

야구에 대한 철학 : 오래 남는 선수가 되자

은퇴 후 계획 : 프로 야구 감독

존경하는 인물 : 장종훈 선수

징크스 : 없음 ( 예전에는 일 년 내내 같은 스파이크를 신어야 맘이 편했다고 함 )

야구 시작 동기 : 단체 훈련의 단합된 모습에 매료되어 초등학교 5학년때 야구 시작

병역 관계 : 방위 복무 (공익 근무 )

여가시간에 하는 일 : 농구, 포켓볼, 여행 (취미 : 여행 / 특기 : 농구 )

하루 평균 수면 시간 : 4 -10

시간 즐겨 입는 옷차림 : 세미 정장, 니트

잠버릇 : 깨어보면 침대와 벽 틈새에 끼어있을 때가 많음

매력 포인트 : 긴 다리 혹은 덧니 ( 본인 생각 )

싫어하는 것 : 방 청소

자신있는 요리 : 고추장 찌개

좋아하는 음식 : 한식

싫어하는 음식 : 양식, 빵

좋아하는 계절 : 겨울 ( 이유 : 비시즌이니까 )

좋아하는 요일 : 월요일 ( 이유 : 쉬는 날이니까 )

좋아하는 꽃 : 장미 ( 이유 : 이쁘니까 )

야구 외에 하고 싶은 것 : 패션쇼 보기

야구 선수가 아니었다면 : 회사원 혹은 패션 디자이너,모델

주량 : 소주 2병 ( 그런데 최근에는 금주라고 함 )

담배 : 끊음

자신의 외모에 대한 생각 : 만족 ( 부모님께 감사드린다고 함 )

애창곡 : 취중진담

( 정보 출처 : http://blog.naver.com/mlpo1439/140057084960 )

 

그림입니다.

꾸준함의 대 명사로 불리우는 정민철선수.

 

신흥초-충남중-대전고를 거쳐 1992년 빙그레 이글스에 입단합니다.

 

1992년 당시 150km를 육박하는 빠른 직구와 함께 낙차가 큰 커브를 주무기로

염종석과 함께 ' 슈퍼루키 ' 로 이름을 날리게 됩니다.

 

당시엔, 전편에서 소개드린 선동열 감독도 " 내 뒤는 정민철이 이을 것이다 " 라고 말할정도였습니다.

92년도에 좋은 선수들이 유독 많이 나왔는데 이때 박찬호,임선동,조성민선수들도 나왔던 해 였습니다

[ 박찬호 : 대한민국 최초 빅리거, 2000년 18승 등 많은 활약으로 현재 메이저리그 120승 기록 ]

[ 조성민 : 요미우리 자이언츠 입단, 기대를 한 몸에받고 올스타전지명 부상때문에 재활만 하다가 선수생활을 접고 현재 해설가로 활동중 ]

[ 임선동 : 현재는 부상때문에 얼굴을 보지 못하나, 현대의 전성기때 정민태,김수경과 더불어 현대의 마운드를 이끌었던 투수 ]

 

 

1992년도엔 빙그레 이글스가

그림입니다.

이정훈(현 천안북일고 감독)

의 .360 25홈런의으로 대 활약

그림입니다.

.299 41홈런으로 한 시즌 최다홈런 김성한선수의 기록을 갈아치운

장종훈선수

 

그리고 

그림입니다.

" 살아있는 전설 " 송진우선수가 무려 19승을 해내면서

빙그레가 83승으로 전성기를 맞고 있을 때 였습니다.

 

빙그레는 1992년 이전까지 3번의 준우승을 해왔던 강팀이었습니다.

 

1991시즌 시작하기 전 정민철선수에 대해선 어느정도 기대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잘할 것이라곤 생각하진 못했죠.

 

그해 정민철은 신인으로써

 

14승 4패 2.48 7세이브 10완투 3완봉 195 2/3이닝 145탈삼진

으로 놀라운 기록을 세웁니다.

 

하지만 1992년 신인왕은

17승 9패로 롯데 자이언츠의 우승을 이끈

" 염종석 " 선수에게 돌아갑니다.

그림입니다.

(당시 치열했던 신인왕경쟁을 잘 나타내주는 잡지의 표면)

 

 

1993년. 흔히들 " 2년차 징크스 " 라고 신인이 첫 시즌을 잘 보내면

대부분 두번 째 시즌 때 부진해서 2년차 징크스라는 것이 생겼는데요.

정민철에겐 그런 징크스따위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1993시즌 빙그레의 마지막 해.

 

13승 3패 2.24 148 1/3 10완투

 

라는 성적을 거둡니다. 비록 첫 시즌이었던 92년에 비해선 성적이 나오진 않았지만

10승에 2점대 방어율이라는 호성적을 거두며 송진우선수와 함께 빙그레의 에이스로 군림합니다.

 

그리고 1994년. 정민철의 커리어하이 즉 몬스터 시즌이 시작되죠.

 

빙그레 이글스는 1993년을 끝으로 역사속으로 사라집니다.

 

그림입니다.

역사속이라고 사라진다고 해봐야 구단 명칭만 바꾼거지만..

 

 

여하튼 정민철선수의 몬스터 시즌이라고 불리는 1994시즌의 성적은

 

 

14승 10패 2.15 9완투 4완봉승 218이닝 196탈삼진

입니다. 피안타율도 매우 낮았습니다. 피홈런도 6개밖에 되지 않았죠.

하지만 방어율,피안타율,피홈런에 비해 너무도 적은 승수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93년까지 빙그레의 4번타자였던 장종훈은

 

.267 10홈런으로 부진했습니다. 타선에선 박지상선수가

 

.304 1홈런 25타점의 성적과, 이민호선수의 .299 14홈런의 성적을 제외하곤 보잘 것 없었던 타선이었습니다.

하지만 투수진 하나는 좋았죠. 한용덕,송진우,구대성 4명의 활약은 나머지 구단의 부러움을 샀습니다.

불펜도 나쁘진 않았구요..

 

하지만 1994년도 한화는 이 성적으로 3위를 기록합니다;;..

타자보단 투수들의 힘으로 3위를 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 정민철 : 14승 4패 2.15 ]

[ 한용덕 : 16승 8패 3.25 ]

[ 송진우 : 9승 10패 3.92 ]

[ 구대성 : 7승 8패 12세이브 2.60 121이닝 ]

 

 

여하튼 차차 전성기를 열어가는 정민철은

 

1995년도 96년도 계속계속 10승과 2,3점대방어율을 찍으며 ' 꾸준함의 대명사 ', ' 한화 에이스 '로 활약합니다.

[95년 13승,96년 13승,97년 14승 2점대방어율, 98년 10승]

 

그렇게 정민철의 1999년이 시작됩니다.

그림입니다.

 

1999년은 한국 프로야구사 극악의 타고투저의 해로 유명합니다.

1999년도는 이승엽선수가 54홈런, 용병 샌더스선수가 40홈런, 마해영선수가 .373 35홈런, 한화 로마이어 선수가 45홈런, 한화 제이 데이비스 선수가 30-30클럽 등

타자들의 시대였습니다. 투수들은 설 자리를 잃었던 해였죠..

 

하지만 그 타고투저 속에서도 정민태선수는 20승을 기록, 정민철선수는 18승을 기록합니다.

타고투저이니만큼 정민철 답지 않은 방어율 3.75를 찍죠.

 

18승 8패 3.75

 

여하튼, 1999년 한화 이글스는 30-30클럽의 제이 데이비스, 3할 강석천, 재기에 성공한 장종훈, 45홈런 대활약 덴 로마이어, 14승 이상목

15승 송진우, 18승 정민철등을 앞세워 창단 첫 우승을 합니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한국시리즈 대결에서 4:1로 승리를하죠.

 

 

그리고 2000년 정민철도 해외 진출이란 것을 해보게됩니다.

 

그리고 그가 간 팀은 현재 이승엽선수가 뛰고 있고, 명실상부한 일본의 최고 인기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전격 이적합니다.

그림입니다.

 

그림입니다.

정민철선수의 일본시절 싸인이라네요. 일본어도 써 있고 연도도 2001년.

 

세준씨, 건강하세요! 

 

라는 말은 정민철이 훈남임을 증명하는..

 

아무튼 정민철은 일본에서 부상으로 인해 별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한화 이글스로 다시 돌아옵니다.

이 때 팔꿈치 부상으로 그의 빠른공은 다시는 볼 수 없게 됩니다..

 

한국 복귀 첫해 7승 13패 5.35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깁니다.

그 다음해인 2003년엔

11승 10패 4.00이라는 성적을 올리면서 정민철은 살아있음을 보여주었으나..

 

2004년. 부상 등 여러가지 악재로 인해

 

0승 6패 7.67의 무지무지 초라한 성적을 남기게됩니다..

 

이때만 해도 정민철은 한물 갔다고 하던 사람들이 많았죠.

2004년엔 한화 팀 성적도 좋지 못했습니다 [7위로 기억..]

 

2005년도 한화에는 큰 바람이 붑니다.

바로 국민감독 김인식감독님 께서 한화 감독으로 취임합니다.

그림입니다.

김인식 감독님은 쌍방울 레이더스의 창단 초기에 정말 어려울 때에 팀을 잘 이끄셨던 분이고요.

1995년 OB베어스 감독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고

2001년도 두산베어스 감독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끕니다.

 

정민철 선수는 2005년 김인식 감독에게 이런 말을 듣고 흔히들 말하는 각성(?)을 했다고합니다..

 

" 너 빵승이라며? "

 

" .. "

 

김인식감독은 과연 재활 공장장이었습니다.

정민철선수는 김인식감독의 밑에서 화려하진 않지만 부활을 하게됩니다.

선발로 풀타임을 뛰면서

 

9승 3패 4.82라는 성적을 남깁니다.

비록 방어율을 본다면 보잘 것 없는 기록이긴 하지만

전 년도까지 0승을 했던 투수였기에, 9승이란 승수가 많아보이는가봅니다.

이정도면 재기엔 성공했다고 볼 수 있겠죠.

 

그 해, 한화는 시즌 초, 4강권 밖 전력팀으로 분류되었으나

 

.306으로 병역비리사건으로 빠진 이영우선수의 아주 큰 빈자리를 매꾸어 준 조원우선수.

.273 26홈런과 3할과 20홈런을 쳤던 전년도만 못하지만, 한화에선 빠져선 안될 선수로 활약한 이범호선수.

.317 23홈런으로 전년도보다 훨씬 향상된 성적을 보여준 김태균선수.

.258 22홈런으로 깜짝 활약을 보여줬던 이도형선수

11승 8패로 노익장을 과시했던 송진우선수 등 시즌 후반 9연승 등으로

 

3위로 2005시즌을 마감합니다.

 

2006시즌 정민철은 더욱 안정을 되찾았죠.

 

7승 13패 3.93

 

이라는 성적을 남깁니다.

7년만의 3점대 방어율 복귀와 풀타임 선발로 한화 이글스의 2006년 준우승에 기여합니다.

 

2006년엔 한화 이글스가 준플레이오프에서 기아타이거즈를 2:1로 꺾고

플레이오프 진출, 현대유니콘스를 플레이오프에서 3:1로 꺾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나

체력빠진 한화선수들은 삼성라이온즈에게 4:1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내줍니다.

 

그리고 정민철 자신, 또 한화팬에겐 잊지못할 2007년이 시작됩니다.

 

2007년. 낙차 큰 커브와 완벽한 제구력으로 그는

 

12승 5패 2.90

그림입니다.

이라는 호성적으로 각종 연말 시상식에서 " 올해의 재기상 "을 휩쓸었습니다.

 

2007년 한화는 용병 세드릭 바워스선수의 11승, 신예 류현진선수의 17승, 부상투혼 구대성의 26세이브 등으로

3위로 시즌을 마감합니다.

 

 

 

그리고 올해로 왔습니다.

 

올해는 확실히 지난 해와 다른 성적을 보여주었습니다.

구위또한 많이 저하되어 선발투수의 구위를 점차 잃어갑니다...

 

2008시즌 성적-  6승 10패 5.23

하지만 2008년엔 정민철이 두개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바로 통산 160승 돌파(통산승 랭킹 2위)와

20완봉승(완봉1위 선동열, 현재 2위) 시즌 중반에는 너클볼도 던져 화재가 되었죠.

여하튼 이런 기록들로 유종의미를 거둡니다.



'스포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대 1루수 최고의 시즌 베스트 10  (0) 2012.11.29
홈런신화 심정수  (0) 2012.11.29
kbo 역대 최고의 클린업트리오 best10  (2) 2012.11.29
이상훈 - "18.44m를 던지지 못하는 날까지"  (0) 2012.11.29
불운대결 윤학길vs정민철  (0) 2012.11.29
마해영  (1) 2012.11.29
문동환  (0) 2012.11.29
장종훈  (0) 2012.11.29
SNS 공유하기
최근 글
붐베스트추억창고
추천하는 글
붐베스트추억창고
💬 댓글 개